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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이야기
: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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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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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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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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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에게 접근했던 이유가 그저 어떻게 한 번 해보려는 흑심이었다는 게 널리 알려진 뒤로, 태준이는 잠적하듯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요. 그 일이 있은 후 자연스럽게 자퇴 처리로 돌리고 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는 소식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었죠.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이후로 여주에게도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좋은 친구인 줄 알았는데, 넌 아니었구나. 얼굴도 더 보여주지 않고, 계절이 바뀐 지금에서야 메신저로만 미안하다는 사과를 건네 오는 태준이에 여주는 핸드폰 화면만 응시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화면을 가리는 검은 형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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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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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이랑 아직 연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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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 갑자기 알림 울려서 본 건데, 태준이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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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다정하게 불러주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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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소리를 지르다 이내 태형이라는 걸 알고 가슴을 쓸어내렸죠. 태형아, 다 좋은데 인기척 좀 내고 와주면 안 될까. 점심시간, 끼리끼리 어울린 학생들이 급식실로 간 사이, 여주의 교실로 찾아와 자연스레 그 앞자리에 앉은 태형이었죠. 그리고 이리 줘봐. 태준이에게 별 감정 없는 여주와 달리 대놓고 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쓰던 태형이는 여주의 핸드폰을 슥 빼내어 빠르게 자판을 두드린 후 다시 여주에게로 건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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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한테 연락하면 내가 너 가만 안 둬. 차단 박을 거니까 두 번 다시 집적거릴 생각 마. - 김태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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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어린 내용의 문자와 함께 제 이름 석 자까지 함께 건 것도 모자라 그 사이 차단까지 박아버린 태형이의 빠른 행동력에 감탄하는 여주였어요. 점심시간인데 밥은, 안 먹어? 자연스럽게 여주의 팔을 뻗어 그 위로 머리를 베고 누운 태형이는 여주를 바라보았죠. 그에 은은하게 웃으며 손에 닿은 태형이의 머리를 쓰다듬던 여주는 고개를 주억거렸어요. 난 오늘 생각 없어, 태형이 넌 배 안 고파? 여주의 물음에 똑같이 고개를 저은 태형이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대답했어요. 네가 배 안 고프대서, 나도 별생각 없어. 그 말에 의아해하던 여주는 이내 태형이의 배에서 울린 배꼽 알람에 웃음을 터트리며 그를 일으켰어요. 안 되겠다, 나 따라와. 여주의 말에 영문도 모른 채 일어난 태형이는 함께 걷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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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어~? 오늘 먹기 싫은 건강식 나와서 핑계 대는 거 다 알거든? 자, 내가 사줄 테니까 얼른 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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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럼 나 피자빵이랑 바나나 우유 사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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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럼 피자빵 두 개 집어. 난 딸기 우유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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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학교에서 정한 건강식의 날인데, 우리 너무 대놓고 일탈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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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형이의 손을 잡고 앞장선 여주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지하의 매점이었죠. 편의점 수준으로 잘 갖춰진 매점으로 향하기 무섭게 태형이의 등을 두드린 여주는 지갑을 들어 보였어요. 그에 종종걸음으로 피자빵 두 개와 우유 두 개를 고른 태형이는 여주의 지갑을 받아 들었어요. 계산을 태형이에게 맡긴 채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여주는 봉지를 달랑거리며 제 지갑을 건네는 태형이를 보다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떠 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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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뭐야, 나 지갑에 오만 원 있었는데. 왜 그대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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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내 돈으로 계산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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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또오? 나도 돈 있는데 왜 자꾸 네가 계산해, 내가 산다고 했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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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네 돈이지. 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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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할 수도 없게 항상 이렇게 다른 음식을 사 먹을 때면 돈을 쥐여 준대도 안 받고 자기가 전부 계산해놓고 능청스럽게 웃어넘기는 태형이었어요. 툴툴거리는 여주의 뒤에서 어깨동무를 한 태형이는 그 길로 여주와 함께 빠른 걸음으로 뛰어 계단을 올랐어요. 다행히 일 층에서 멈춘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까지 오른 태형이는 비상구 출입문을 열며 그 앞에 마련된 옥상 정원 테라스를 두리번 거렸죠. 아싸, 명당자리 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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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빵 대령이오. 우유랑 같이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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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너도 맛있게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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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잘 들지만 차광막 때문에 눈부시진 않고, 시야가 탁 트여 전체적인 모습이 경관처럼 눈에 확 띄는 벤치에 자리를 잡기 무섭게 여주의 빵과 우유를 챙긴 태형이었죠. 뽁. 우유팩 안에 빨대를 꽂아주는 것도 잊지 않고 여주가 한 입 먹자 따라서 먹기 시작한 태형이는 입안에 착 감기는 맛에 사르르 웃음을 지어 보였어요. 그렇게 좋아? 여주의 물음에 물어 뭐 하겠냐며 고개를 빠르게 끄덕인 태형이는 빠른 속도로 먹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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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거 좀만 더 먹어. 너 피자빵 좋아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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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더 먹으면 너 배고프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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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괜찮아, 우유 마시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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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럼 나 사양 안 하고 더 먹는다? 무르기 없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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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가 몇 입 먹기 시작할 때, 빵 하나를 다 먹어치운 태형이었어요. 그에 제 빵의 반을 갈라 태형이에게 쥐여준 여주는 맛있게 먹는 태형이를 보며 예쁘게 웃어 보였죠. 빵이 그렇게 좋아? 그에 열심히 먹으며 우유를 한 모금 마신 태형이는 부른 배를 두드리며 만족스레 대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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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밥보다 빵이 좋은 건 어쩔 수 없나 봐. 근데 조금 아쉬운 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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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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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만든 빵보다 맛있는 건 없던 거 같아. 나름 이것도 유명한 빵집에서 공수해서 들여오는 건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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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근데 그건 나도 그래. 엄마가 만든 빵은 뭐랄까, 잊히지 않는 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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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사람들이 엄마네 회사 빵을 좋아해 주는 거겠지만. 생긋 웃으며 남은 한 입거리의 빵을 먹고 우유를 한 모금 빨아마신 여주였어요. 자, 이걸로 손 닦아. 이내 태형이가 건네는 티슈를 받아들며 손에 묻은 기름기와 소스를 닦아낸 여주는 이내 소리 내어 웃음을 터트렸어요. 그에 의아해하던 태형이는 이어지는 여주의 말을 듣곤 제 상태를 확인하였죠. 그러니까 태형이를 보고 여주가 웃었던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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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팔에 셔츠 단추는 다 풀어 젖히고, 복장 상태는 불량하면서 이런 거 챙길 정신은 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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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갑해. 반팔로 다니고 싶은데 걸리면 벌점 받을까 봐 정말 입고만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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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태형이, 장가가면 예쁨 많이 받겠네. 이렇게 세심한 남자를 싫어할 여자가 어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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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가면, 얼마나 예뻐해 줄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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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하지 못한 교복 차림을 하고도 절 위해 티슈까지 챙겨 온 태형이의 모순적이면서도 귀여운 행동 때문이었어요. 그에 덜렁거리는 셔츠를 펄럭이며 따분한 표정을 짓던 태형이는 이어지는 여주의 말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여주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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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심한 남자를 계속 두고만 볼 거야,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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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 언제까지고 기다려 줄 수 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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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건 당연한데. 가끔씩 불쑥불쑥 어필을 해줘야 네 마음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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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으래, 근데 이미 약속했잖아. 나 너랑 한 약속 꼭 지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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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의 말에 배시시 웃은 태형이는 여주의 손을 이끌어 제 얼굴을 받친 채 대답해 주었죠. 딱히, 긴장은 안 해도 될 듯. 이런 세심함은 김여주 한정 자동 반사니까. 그 말에 할 말을 잃은 듯한 여주의 얼굴이 목 끝까지 훅 달아올랐어요. 그에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리는 태형이와 버벅대는 말투로 어설프게 쏘아붙인 여주였어요. 그러자 여주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태형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어요. 너, 얼굴 빨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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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건 단지 더, 더워 가지고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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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람 엄청 시원하게 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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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그래. 좋아서 그런다, 좋아서. 이제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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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나도 너 엄청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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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옥상 정원에 올라온 이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봐도 상관없다는 듯이, 온통 눈앞의 서로만을 가득 담아낸 태형이와 여주였어요. 그래도 오 년 안엔 지켜줄 거라 믿어. 손을 잡고 손끝으로 하트를 그리는 태형이에 그저 미안한 미소를 지으며 답한 여주였어요. 응, 노력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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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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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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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돌아온 가을, 열아홉 번째 생일을 맞이한 지민이를 위해 주말을 투자하기로 마음먹은 태형이와 여주였어요. 올봄, 꿈에 그리던 데뷔를 마치고 연예인으로서 한 발 내디딘 친구를 축하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한 두 아이들은 약속 장소 뒤편에서 지민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죠. 비교적 한적한 카페 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소파에 앉더니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하는 지민이를 보며 망보던 태형이와 여주가 타이밍 맞춰 큰 소리로 외쳤어요. 하나, 둘! 박지민~ 노올자! 그 말에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지민이는 두 친구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어 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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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이게 몇 년 만이야? 반갑다, 진짜. 이 년 반? 삼 년? 그 정도 됐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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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 이번에 그 뭐야, 하얀 민소매 입고 바가지 머리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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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앨범 냈지. 어때, 나 좀 매력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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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흐, 당연하지! 지민이 너 방송 나올 때마다 우리 엄청 열심히 챙겨 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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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가 촛불을 켠 케이크를 들고 다가가자 후다닥 뛴 태형이는 지민이의 머리 위에 고깔모자를 씌웠어요. 빡지, 생일 축하한다. 헤드록을 걸며 캑캑대는 지민이의 머리를 헝클어트린 태형이는 지민이를 이끌고 여주가 들고 서 있는 케이크 앞으로 다가갔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