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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5월 씨순길 보고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5-05-07 (목) 06:13 조회 : 1183
발송 2015-05-04
순례일 2015-05-02
다음 6월 첫 토요일 현충리 6월6일 씨순길은
정릉 -수유리 애국지사묘역 - 4.19국립묘지

아침 10시 정릉 (위)버스종점에서 만납니다.
< 다석과 김교신 >

다석이 사망가정일을 정한 것은 김교신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김교신은 1945년 4월 타계하였고 유영모는 1955년 자신이 일년 뒤 1956년 4월26일 죽는다고 사망가정일을 선포했습니다. 김교신은 함석헌과 1901년 동갑입니다. 유영모는 탄신일이 1890년으로 김교신보다 136개월 먼저 태어났는데 김교신보다 136개월 더 살고가는 날짜를 자신의 사망가정일로 정했습니다.

유영모와 김교신의 만남에는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와 함석헌의 역할이 있습니다. 다석이 일본 유학시절(1912.9~1913.6) 동경에는 김정식이 조선YMCA 총무로 있었습니다. 김정식은 한 살 많은 우치무라 등 일본교계 지도자들과 교분이 두터웠는데 다석은 자연스레 우치무라의 강연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다석이 우치무라의 성서연구회에 참석한 적은 없습니다.

다석의 오산학교 교장시절 함석헌은 다석의 수신(修身)시간에 우치무라의 얘기를 들었는데 후일 함석헌의 동경사범 유학시절 우치무라의 성서연구회에서 김교신을 만납니다. 김교신은 동경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무교회 기관지로 <성서조선>을 발간합니다.  함석헌의 말을 듣고 김교신은 이미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다석이 무교회신앙을 따르는 것으로 생가하고 곧 바로 그를 찾아갔으나 뜻 밖에 거절을 당합니다. 정통 기독교인 우치무라의 제자 김교신과 다석의 신앙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다석은 김교신을 알고 4년이 지나서야 김교신의 성서연구 모임에 나가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다석은 무교회 신앙의 그들을 동요시킬까 염려하여 언제나 말을 삼가하는 자세를 지켰습니다. 다석과 김교신의 신앙은 이렇게 달랐으나 다석을 스승으로 받아들였고 다석은 자신의 속 뜻을 알아주는 김교신이 고마왔습니다. 다석의 영성체험을 간증하는 '38년만에 믿음에 들어감'이라는 글은 김교신을 위한 것으로 다석이 스스로 원고를 들고 잡지사 <성서조선>을 찾았다고 합니다.
< 다석과 김교신, 그리고 다원주의 >

『유영모가 김교신을 제자로 생각했겠는가? 함석헌과는 달리 좋은 동지로 여기면서 한편으로 존경도 했을 것으로 믿어진다. 김교신은 아마도 유영모를 높이 우러러보고 정신의 스승으로 가슴에 모시고 살았을 것으로 믿어진다.<유달영 다석 유영모 추모문 중에서>』

씨알 SNS(카톡)에 다석의 신관(神觀)에 관한 글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하느님은 없이 계시는 이다. 사람은 있으면서 없다. 나(다석)는 하느님을 생명의 근본으로 믿는 것이지 창조주로서 믿는 것이 아니다. 상대세계에서 상대적 존재로 사는 사람은 차마 하느님의 사랑에 대하여 말 못 한다.

『유영모는 상대방의 신앙을 무조건 존중한다. 내가 말하는 대로 믿어야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종교는 자유인데 자기가 어떻게 믿든 자기가 분명한 것을 믿으면 된다. 남의 말을 듣고 믿으면 그게 뭡니까? 한 마리 개가 의심이 나서 짖는데 다른 개들이 따라 짖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다석전기 박영호 321쪽>

다석과 기독교 전통교리에 투철하였던 김교신의 신앙은 분명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김교신은 다석을 스승으로 모셨고 다석은 김교신을 구도(求道)의 동지로 여겼습니다. '상대방의 신앙을 무조건 존중'하는 다석과 김교신에게서 우리는 다원주의적인 겸허와 관용, 그러나 결코 휘지않고 올곧은 정신과 영혼을 발견합니다.
< 다석과 4.19 시민혁명 >

어제 4.19혁명 55주년 되는 날입니다.

그날의 의의를 다석일지에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 열아옵누리갈(19세기) 다가서
스믈누리갈(20세기) 들자

한아옵한아옵 이러셋 하루(1919.3.1) 스고
이어숨쉰
한아옵 예순해 네 아옵(1960.4.19) 날에
갸륵한 어린 피는 드리니"

                     - 다석일지 1960.4.30 -

역사는 강물과 같습니다. 쉬지 않고 흘러갑니다. 혹독한 엄동에도 두터운 어름 아래 강물은 쉬지않고 흐릅니다. 그렇게 스믈누리갈(20세기)의 강물은 흘러 3.1 독립혁명에서 발원한 씨알혁명의 물결은 4.19시민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 5월2일 이후 씨순길 4구간 미리 알립니다 >
쌍문동 함석헌자택을 개조하여 기념관으로 곧 문을 엽니다.

북한산은 씨알사상의 요람이며 성지입니다.

서쪽 구기동 유영모 자택지에서 동쪽 함석헌 기념관에 이르는 길을
네 구간으로 나누어 걷습니다.

4월에는 아래 1구간을 걸었으니 5월에는
유영모 자택지에서 정릉동 김교신 자택지까지 2구간을 걷습니다.

1구간 : 연신내역에서 구기동 유영모 자택지
2구간 : 유영모 자택지에서 정릉동 김교신 자택지
3구간 : 김교신 자택지에서 4.19 민주묘지
4구간 : 4.19 민주묘지에서 함석헌기념관(쌍문역)

회 계 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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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 잔고(4.4)   58,400원(-)
회비수입        120,000원
식대 지출       10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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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회 잔고(5.2)   38,400원(-)
고유번호 : 201-82-05996, 서울시 종로구 계동2길 26 여흥민씨빌딩 202호
재단법인 씨알(CR Foundaion) 이사장 김원호
Tel : 02-2279-5157  E-mail : crlif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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